紹修書院 (소수서원) [사적 제55호]

  • 위치 :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내죽리 152-8)
  • 면적 : 89,975m² (문화재지정구역 18,657m², 문화재보호구역 71,318m²)
  • 주요건물 
    • 강학당, 문성공묘, 일신재, 직방재, 지락재, 학구재, 전사청,장서각, 경렴정, 고직사
    • 사료관, 영정각, 취한대
    • 주차대수 : 134대 (대형 38, 소형 102, 장애인 8)
  • 연혁
    • 1542(중종37) 풍기군수 주세붕이 숙수사 터에 안향선생 사묘 건립
    • 1543(중종38) 백운동서원 건립
    • 1550(명종5) 명종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 사액
    • 1962년 사적 제55호 지정
  • 지정문화재
    • 사적 : 소수서원 (제55호)
    • 보물 : 숙수사지 당간지주(제59호), 문성공묘(제1402호), 강학당(제1403호)

紹修博物館 (소수박물관 )

  • 위치 :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 (청구리 347번지) 일원
  • 면적 : 14,423.21m²
  • 소장유물 : 31,886점 (전시 623점)
    (자체 1,714, 기증 13,257, 기탁 8,017, 구입 8,898)
  • 지정문화재
    • 국보 : 안향 초상(제111호)
    • 보물 : 대성지성문선왕전 좌도(제485호), 주세붕 초상(제717호)
    • 중요민속자료 : 김흠조 부부묘 출토유물 (제242호)
    • 도유형문화재 : 서총대친림연회도(제238호), 이개립 문중 소장문서(제329호) 소수서원 현판(제330호), 소수서원 소장 판목(제331호)

선비촌

  • 위치 :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청구리 357번지) 일원
  • 면적 : 57,719.27m²
  • 주차대수 : 134대 (대형 32, 소형 98, 장애인 4)
  • 건물 : 39동 2,502.49m²
    • 선비촌 : 와가 7, 초가 5, 강학당 1, 기타 10
    • 저잣거리 : 와가 10, 초가 2
    • 관리사 : 관리사무소 1, 화장실 3
  • 가옥현황
    • 와가 : 7채 (숙박체험가능)
      인동장씨고택, 해우당고택, 두암고택, 김문기가, 김상진가, 만죽재고택, 김세기가
    • 초가 : 5채
      장휘덕가, 두암고택 가람집, 김구영가, 김규진가, 김대진가
  • 활용
    • 선비촌 : 숙박체험장 및 전통가옥 견학 관광코스
    • 저자거리 : 음식점 6, 떡집 1, 찻집 1, 한지공방 1, 특산물 판매 1, 기념품 매장 1, 천연염색공방 1
    • 광장 : 민속공연 행사장으로 활용
  • 홈페이지 : http://www.sunbichon.net/home/
  • 연락처 : 054-638-6444

한국선비문화수련원

  • 위치 :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806 (청구리 389번지) 일원
  • 면적 : 60,395m²
  • 건물
    • 문화체험시설 5동 526.14m² : 예절교육관, 예절교육관행랑체, 세미나실, 관리실, 도예공방체험방
    • 숙박체험시설 6동 337.68m² : 체험장 3동, 행랑채 3동
    • 서비스시설 4동 313.44m² : 전통찻집, 매점/기념품판매소, 누삼문 등
  • 활용
    • 인정예설교육
    • 전통문화체험교육
    • 연수/위탁교육
    • 특별체험교육
    • 수학여행
  • 홈페이지 : http://www.sunbi.info/
  • 연락처 : 054-631-9888

서원의 설립배경

서원은 조선시대 유림의 사상적 본거지이자 활동기반으로서 유림의 운명공동체로 강학(講學)과 제향(祭享) 두 기능을 담당했다.

서원은 강학과 제향기능을 가진 점에서는 관학(官學)과 차이가 없지만 제향의 대상이 공자와 그의 제자인 성현(聖賢)이 아닌 우리나라 선현(先賢)이라는 점과 중앙정부가 아닌 유림이 그 설립주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방의 향교, 중앙의 사부학당, 성균관으로 관학 중심이던 조선초기의 교육제도는 중기를 지나면서 세조의 왕위 찬탈반대에 참여한 집현전 폐지와 연산군에 의한 성균관의 황폐화 등으로 국가지원의 부족으로 관학은 점차 교육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관학이 교육기능을 상실하게 되면서 학덕을 겸비한 유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서재(書齋), 정사(精舍) 등의 사학(私學)을 설립하여 학문을 보급하고 학문을 계승하였다.

중종반정 후 중종은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면서 성균관을 중수하는 등 관학 중심으로 한 교학진흥책을 추진하였으나 효과를 얻지 못했고, 이에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 사림세력이 의리명분을 바탕으로 하고 민심수습과 내적 인격도야를 추구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학문풍토를 추구하며 도학(道學)정치에 기초한 교학진흥책을 제시하였다. 그 교학진흥책 중 하나가 바로 문묘종사(文廟從祀)운동이었다. 이는 유림의 학문적 우월성과 정치적 입장을 강화해주는 측면과 함께 향촌민의 교화라는 명분으로 서원 발생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후 선조 때에 이르러 유림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서원은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서원은 도학을 이상으로 삼던 사대부 사림세력들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대표적 산물이다.

조선 성리학의 문화유산, 서원

조선 성리학의 문화유산인 서원은 선비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선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향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로 후에 지방유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견제 기반으로써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조선중기 교육적 기능이 쇠퇴의 기미를 보이던 관학에 대응하여 새로운 교육활동의 중심지로 부상했던 서원은 과거시험과 법령의 규제에 얽매인 관학과는 달리 학문의 자율성이 존중되어 출세주의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아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유교적 인재 배출의 요람으로 1543년(중종38년)에 3명의 입원유생을 시작으로 1888년까지 모두 4,300여 명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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