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 (退溪 李滉, 1501 ~ 1570)

퇴계 선생은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백운동(白雲洞 ) 서원을 소수서원으로 사액(賜額) 받게 하셨고, 이 서원에서 직접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셨다. 또한, 신분과 계급을 떠나 가르침을 원하던 무쇠장이 배순을 제자로 삼아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평민교육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또한 주세붕선생이 서원을 세워 안향선생을 높이자, 퇴계는 회헌선생의 수제자인 역동 우탁(易東 禹倬)을 기리고자, 역동서원을 세워 안향선생의 인격과 학풍을 진작시키고 조선 성리학(性理學)을 꽃 피우셨다.

회헌선생의 '유국자 제생문(諭國子諸生文)'을 보고 퇴계는 '유사학 사생문(諭四學師生文)'을 지었으며 안축의 죽계별곡을 보고 '도산12곡'을 남기셨으며, 주희(朱熹)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따 백운동 서원에서 소백산으로 오르며 '죽계9곡'을 명명(命名)했다.

1568년 이황이 경연(經筵)에 입시하여 성리학을 강의하고 심법(心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성리학자의 도설(圖說)에서 발췌하여 각 도식 아래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여 임금에게 강론하였는데, 이것이 성학십도(聖學十圖)이다.
이것을 저술한 이유는 17세의 어린 임금인 선조를 성왕(聖王)으로 인도하려는 데 있었으나, 선조 한 사람만을 위해 지은 것은 아니라 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뜻도 있었다. 이 성학십도(聖學十圖)의 목판본은 소수박물관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영주는 퇴계가 형인 '온계'와 상봉하던 죽령고개와 처가댁이 있던 푸실(草谷)마을, 외가 동네인 영천고을, 퇴계, 아들, 손자까지 3대가 공부하던 제민루 의국(醫局), 부인 무덤, 무쇠장이 제자 배순 유적 등 퇴계와 관련된 많은 유적지가 전해오는 퇴계학(退溪學)의 시원(始原)이 되는 곳이다.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뵌 일 없네
고인을 못 뵈어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쩌리
- 안향 선생을 흠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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