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경(敬)으로 지켜라
〔심통성정도〕는 글자 그대로 ‘마음이 성품과 감정을 통괄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특이하게도 그림이 셋이다. 맨 위에 있는 그림은 정임은이 그린 것이고 아래 두 그림은 퇴계 자신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 정임은과 장재의 심통성정도설을 덧붙이고, 퇴계 자신의 긴 해설을 추가했다.
우선 정임은의 주장을 보면 사람은 음양오행의 뛰어난 작용을 받아 태어나 성품과 감정이 생기고 이성품과 감정을 통합하는 것이 곧 마음이므로 마음이 고요해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성품〔性〕이고 마음의 본체〔體〕이며, 마음이 외물에 대해 느껴져 움직이는 것이 감정〔情〕이고 마음의 작용〔用〕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재는 마음이 성품과 감정을 통괄하므로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성품을 기르고 감정을 단속해 나가는 것이 학문의 길이라고 여겼다.
性이 발현하여 情이 되는 순간이 바로 하나의 마음이 여러 측면으로 분화되는 중요한 경계이며 이 순간 인간의 선과 악이 나뉘므로 性이 발현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착한 본성을 보존하고 기르는 공부를 충실히 할 것이며, 性이 이미 발현했을 때는 반성하고 살펴보는 습성에 익숙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배우는 사람은 敬 공부에 전념하여 올바른 이치를 깨달아 욕망의 분별을 확실히 해야 한다.
퇴계는 이어 자신이 그린 두 그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먼저 가운데 그림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생성 변화의 원리〔無極而太極〕를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고 인간도 그 원리를 내재적으로 갖추고 있는데 그것이 곧 성품이고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것이며, 따라서 성품이 그대로 발동하면 감정이 되더라도 선하므로 그것을 사단(四端)의 성품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래 그림에서는 사람은 존재원리로서의 理와 심신의 구성요소로서의 氣로 구성되므로 理氣를 합한 현실적이고 구체적 차원에서의 기질의 성품을 논하면서, 이 기질의 성품이 발동해 감정이 되면 理와 氣가 서로 따르는 경우와 해치는 경우가 생기니 이른바 理가 아직 충분히 발동하지 못했을 때 氣가 덮어버리면 이 감정은 선하지 않게 된다.
또한 칠정(七情)도 氣가 발동해 理에 타면 선하나 만일 氣가 발동해 감정대로 흐르고 理를 없애버리는 일이 생기면 그 감정은 악이 된다.
이처럼 퇴계는 성품과 감정을 이원적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성품과 감정을 통합해 몸을 주재하는 마음을 敬으로 키우고 지켜 본연의 성품이 발로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