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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영주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란?

1972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하여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말합니다.
인류의 보편적이고 뛰어난 가치를 지닌 각국의 부동산 유산이 등재되는 세계유산의 종류에는 문화유산(ICOMOS), 자연유산(IUCN) 그리고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함께 담고 있는 복합유산(ICOMOS/IUCN)이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파괴의 위험에 처한 유산의 복구 및 보호 활동 등을 통하여 보편적 인류 유산의 파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력 및 나라별 유산 보호 활동을 고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을 갖춘 것이어야 합니다. 즉 유산의 진정성과 가치의 탁월성 및 국가의 관리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세계유산 선정은 총 4단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 1단계 : 세계유산잠정목록(Tentative List) 등재
  • 2단계 : 등재신청서(The Nomination File) 제출
  • 3단계 : 자문기관(The Advisory Bodies)의 평가 (서면평가, 현지실사)
  • 4단계 : 세계유산위원회(The World Heritage Committee) 결정

부석사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2019년 등재

소수서원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 「한국의 서원」 2019년 등재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2018년 등재)

부석사 전경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7개의 연속유산으로 부석사, 통도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의 사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7세기에서 9세기에 창건된 이들 7개 사찰은 신앙과 영적 수행, 승려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다양한 불교신앙이 산사의 경내에 수용되었으며, 이는 역사적인 구조물과 전각, 유물, 문서 등에 잘 남아있습니다.
또한 이들 산사는 조선시대 억압과 전란으로 인한 손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신앙과 일상적인 종교적 실천의 중심 장소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승원의 기능을 잘 보존해 온 것이 높이 평가되어 2018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특히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의상대사와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중요한 사찰입니다. 부석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시기인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입니다. 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는 신라 하대에는 대선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가람으로 많은 대중이 생활하고 승려가 되기 위해 처음 출가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2019년 등재)

소수서원 전경

‘한국의 서원’(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건립)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의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로서 인정받아 201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9개 한국의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은 최초의 서원으로 서원의 시작과 발흥의 계기가 된 역사적 장소입니다. 소수서원은 안향(安珦)을 기리고자 1543년에 건립한 최초의 서원입니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고려 말 성리학을 들여온 순흥 출신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강당을 건립하여 백운동서원을 세워 유학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조정에 건의하여 1550년(명종 5) 국왕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받아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습니다. ‘소수(紹修)’는 ‘학문을 이어서 닦는다’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