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부석사 원융국사비  이미지
부석사 원융국사비
  • 소재지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고려 문종 8년(1054)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예부시랑 고총이 찬하고 유림랑 임호가 전과 서를 했다. 이수와 귀부를 갖추었지만 파손이 심한 편이고 비신도 파손, 마멸이 심해 판독이 안되는 부분이 많다. 글자는 구양순체의 해서로 『해동금석원』등의 문헌에 그 내용이 전한다. 이수는 좌우가 긴 팔작지붕형이며, 처마 끝선으로는 전각이 있고, 용마루까지 표현되어 있다. 귀부는 뒷면은 조각이 남았으나 앞쪽은 파손이 심한 편이다. 육각형의 귀갑문은 안에 王자를 넣어 정교한 표면처리를 하였다. 원융국사(964∼1053)는 고려초의 명승으로 자는 혜일, 속성은 김씨이다. 12세에 용흥사에서 승려가 되어 복흥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고려 성종 10년(991)에 승과에 급제하여 대덕이 되었다.

현종 초에 승통에 오르고 정종 7년(1041)에 왕사, 문종 때 국사가 되었다. 묘지사의 주지를 지내고 부석사에서 법사가 되었다. 문종 7년(1053)에 부석사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를 원융국사라 하고 절 동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비가 있는 원융국사비각에는 해동화엄종조의상국사비가 함께 봉안되어 있는데 비신은 새로 조성한 것이고 비갓과 비좌는 원융국사비가 발견된 곳에 함께 있었다 한다. 비갓은 우진각형으로 정상중앙에 연화문을 돌린 보주가 있고 처마끝에는 귀꽃장식이 잘 남았다. 비좌는 둥근 중판연화문대를 돌린 원형좌로 연화문은 반원이 연속된 간단한 형식이다.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중,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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