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자는 조선중기 문신으로 삼사(三司)의 청요직과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계서 성이성(溪西 成以性. 1595 ~ 1664)의 정자이다. 성이성은 청렴함과 강직함을 인정받아 4차례나 암행어사로 나아갔었는데, 이때 남원고을에서 남긴 일화가 소설 ‘춘양전’으로 남게 되면서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성이성은 인조5년(1627) 식년문과에 병과(兵科) 1위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말년에 퇴직한 후 이곳에 계서정을 짓고 학문증진과 후학양성에 힘썻다고 전한다.
처음 지었을 때는 초가(草家)였기에 초당(草堂)이라 부르기도 하며, 임금이 사직한 성이성을 그리워한 까닭에 몰래 찾아와 하룻밤 머물고 갔다는 전설이 있어 어와정(御臥亭)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