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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1941. 11. 01 영주군 영주읍 가흥리
  • 1980. 04. 01 영주시 승격으로 가흥2동으로 개편
  • 1993. 09. 14 現청사로이전 (영주동545-9번지⇒가흥동479-7번지)

지명유래

가흥2동 지명유래를 지명, 자연부락, 유래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명 자연부락 유래
고현동 고현(古峴) 조선 명종 때 반남박씨 일족이 귀내마을에 터전을 이루어 살았을 때, 당시 마을 앞에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 둔덕 아래로 시냇물이 흘러내려 느티나무 괴(槐) · 내 천(川)자를 써서 『괴천槐川(괴내)』 또는 옛 고古 · 내 천(川)자를 써서 『고천(古川)』이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귀내』라 불러오고 있다.
귀내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1.2 km 쯤 가면 장수고개 마을이 있는데, 옛날 마을 뒷산 고갯길을 통하여 멀리 동해에서 소금장수와 생선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넘나들었다고 하여 장수 상商 · 고개 현(峴)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상현(商峴)(장수고개)』이라 불러오고 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고천(古川) 마을의 고(古)자와 상현(商峴) 마을의 현(峴)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고현(古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핑구재 서천폭포에서 도로 오른편을 따라 약 200m 쯤 가면 갈림길이 있고, 그곳에서 약 200m쯤 가서 가흥정수장 앞 영암건널목을 건너 약 100m쯤 가면 오른편으로 영광여자중학교 방향으로 너머 가는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핑구재』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겨울에 소백산에서 내려 부는 찬 바람이 이 고개를 지나면서 핑핑 소리가 난다 하여 고개 이름을 『핑구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새마 핑구재 입구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300m쯤 가면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새마(신촌)新村』라 불러오고 있다.
귀내보트장 새마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100m쯤 가면 왼편에 그리 넓지 않은 못이 있는데, 40여 년 전 까지만 하여도 이곳에서 보트를 띄워 놀이를 즐겼다고 하여 이곳을 『귀내보트장』이라 불러오고 있다.
성재(城峰) 동수나무 성황당 뒤편으로 해발 309m의 높다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봉우리를 『성재(성봉)城峰』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영천군지에 의하면, 이 봉우리를 『고모당산(姑母堂山)』이라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봉우리에 고현산성(古峴山城)이 있었다고 하여 『성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귀내 귀내보트장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400m쯤 가면 오른편 산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귀내(槐川)』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명종 때 반남박씨 형(珩)이라는 선비가 터전을 이루어 살았는데, 당시 마을 앞에 큰 느티나무가 서있는 둔덕 아래로 시냇물이 흘러내려 느티나무 괴(槐) · 내 천(川)자를 써서 『괴천(괴내)槐川』 또는 옛 고古 · 내 천(川)자를 써서 『고천(古川)』이라 불렀 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하여『귀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은 본 마을을 아랫귀내 웃마을을 웃귀내라 부르고 있다.
태봉(胎封) 귀내 마을 동편 숲 속에 괴정(槐亭)이라는 작은 정자 옆에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이 봉우리를 『태봉』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어느 왕세손의 태(胎)를 봉안한 곳이라 하여 태실(胎室)이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이 바뀌어『태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왜정시대에 일본인들이 태실을 도굴하여 백자(白磁) 태호(胎壺)(항아리)가 출토 되었는데, 이를 귀하게 여긴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한다.
중산골 고현교에서 오른편 갓골 마을 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오른편으로 시립화장장 방향으로 가는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중산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옛날 이곳에 절골 스님들의 공양처가 있었다고 한다.
정불리골(淨佛里) 철탄산산당 입구에서 시립화장장 방향 오른편으로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곳에 정불사(淨佛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정불리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큰골 정불리골에서 시립화장장 방향 왼편으로 긴 골짜기가 있는데, 골짜기가 길고 넓다 하여『큰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던지미골 고현2교를 건너 농로를 따라 약 300m쯤 가면 왼편에 폐비닐을 매립한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던지미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웃귀내 고현교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300m쯤 가면 KBS중계소가 있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귀내 마을 윗편에 있다고 하여『웃귀내』라 불러오고 있다.
골안 웃귀내 KBS중계소 길 건너편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이 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하여 『골안』이라 불러 오고 있다.
탑골(塔谷) 골안 마을에서 오른편 산길을 따라 약 300m쯤 작은 고개를 너머 가면 천운사라는 암자가 있는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곳 절터에 석탑이 있었다고 하여 『탑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40여 년 전 까지만 하여도 석탑의 면석(面石) 등이 남아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하여 다른 사찰로 옮겨져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장수고개(商峴) 장수고개 성황당 입구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300m쯤 가면 오른편 산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장수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 산 고갯길을 통하여 멀리 동해에서 소금장수와 생선장수들이 등짐을 지고 넘나들었다고 하여 장수 상(商) · 고개 현(峴)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장수고개(商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봉우재 장수고개 마을 뒤편으로 높다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봉우리를 『봉우재』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왜적의 침입이나 나라의 변고가 있을 때 이 산봉우리에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워 알리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고 하여 『봉우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영천군지에 의하면, 이 산을 성내산(城內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아지동(阿芝洞) 장수교를 건너가면 왼편 산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아지동』이라 불러 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중종 때 전의이씨 개신(蓋臣)이 마을을 지나다가 죽계천 맑은 시냇물과 산세가 아름다워 이곳에 터전을 이루어 살게 되었는데, 마을이 아주 작으면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여 작을 아(阿) · 아름다울 지(芝)자를 써서 『아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영풍군 안정면 아지동이었는데, 1980년 4월 1일 영주읍이 시(市)로 승격되면서 가흥2동으로 편입되었다.
세시골 아지동 마을에서 순흥 방향으로 약 300m쯤 가면 왼편에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세시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창진동 창진(昌津) 국도유지사무소를 지나 남원천 창진교 다리와 중앙선 철길을 건너 약 400m 쯤 가면 창부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조선시대 중앙관리들이 지방으로 출장하면서 말을 갈아타던 창보역(昌保驛)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창보(昌保)』라 불렀다.
이 창보마을 입구 세 갈레 길에서 오른편 산 아랫길로 약 300m 쯤 가면서늘기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앞으로 순흥면에서 흘러내리는 죽계천 · 안정면에서 흘러내리는 홍교천 · 풍기에서 흘러내리는 남원천 세 물길이 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석 삼三 · 나루 진(津)자를 써서 『삼진(三津)』이라 불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창보 마을의 창(昌) ·삼진 마을의 진(津)자를 써서 『창진(昌津)』이라 하였다.
창부(昌保) 국도유지사무소를 지나 창진교를 건너서 중앙선 철길을 건너 약 400m 쯤 가면 큰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창부』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마을은 조선시대 관리들이 지방으로 출장하면서 말을 갈아타던 창보역(昌保驛)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창보(昌保)』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창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영천군지에 의하면 당시 창보역에는 역리(驛吏) 26인 · 노비 13인 · 대마 1필 · 중마 3필 · 하마 10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 창보역에서 말을 키우던 마장(馬場)터 흔적이 중앙선 철길 옆 논 가운데에 둔덕을 이루어 남아 있다.
약수동 창부마을 창진부녀회수퍼마켓에서 아지동쓰레기매립장 방향으로 약 700m 쯤 가면 오른편에 인삼밭이 있는데, 이곳을『약수동』이라 불러 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곳 논 가운데에 약물이 샘솟아 피부병에 효험이 있었다고 하여 『약수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재궁고개 약수동에서 아지동쓰레기매립장 방향 오르막길로 약 300m 쯤 가면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재궁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고개 너머에 재궁(齋宮)이 있었다고 하여 『재궁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절 골 제궁고개 너머 왼편에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 하여 『절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금암사(琴寺岩)라는 절이 있어 석조불상이 있었는데, 안정면 어느 절로 옮겨갔다고 한다.
고바우골 제궁고개를 너머 약 700m 쯤 가면 안정면 오계리 보치골과 이어지는 넓은 들이 있는데, 이곳을 『고바우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곳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어느날 해 질 무렵 한 스님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자 “우리 집에 늘 나그네들이 많이 찾아오니 제발 오지 않도록 해주면 시주를 하겠다.”고 부자가 말하였더니, 스님이“ 마을 앞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깨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하자 부자가 바로 하인을 시켜 바위를 깨트려 버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부자집의 가세가 기울어져 마을을 떠나버렸는데, 바로 그 바위가 벼를 보관하는 창고(고庫)였으므로 부자가 망하게 되었다고 하여 『고바우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제방 둑을 따라 내려가면 웃서늘기 마을로 이어진다.
서늘기 서늘기 마을 앞으로 순흥면에서 흘러내리는 죽계천 · 안정면에서 흘러 내리는 홍교천 · 풍기에서 흘러내리는 남원천 세 물길이 이 마을 앞에서 합류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석 삼三 · 나루 진(津)자를 써서『삼진(三津)』 이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마을 이름을 『서늘기』라 불러 오고 있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이 마을 뒤편 무동산 마루에 넓다란 무동바위 주변 서늘한 그늘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서늘기』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랫서늘기 창진교를 건너 중앙선 건널목을 지나 약 300m 쯤 가서 세 갈레 길에서 오른편 산 아랫길로 약 300m쯤 가면 창진교회가 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아랫서늘기』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에는 함창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웃서늘기 아랫서늘기에서 윗편 산 아래 길로 약 600m쯤 들어가면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웃서늘기』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 북쪽 농로를 따라가면 『고바우골』로 이어진다.
풀미골 웃서늘기 마을 뒤편으로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풀미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상줄동 상줄上茁 나무고개를 너머 안정 방향 비상활주로를 따라 약 1km 쯤 가서 왼편 농로를 따라 약 600m쯤 가면 산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줄포(茁浦)』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때 나주정씨(羅州丁氏)들이 강원도 원주에서 이주해와 살면서 마을 앞 물가에 줄(茁)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하여 줄 줄(茁) · 물가 포(浦)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줄포』라 불렀으며, 윗마을을 『상줄(上茁)』· 아랫마을 『필두(筆頭)』마을을 『하줄(下茁)』이라 불러왔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윗마을인 줄포마을의 상줄上茁자를 따서 마을 이름을 『상줄(上茁)』이라 하였다.
재궁골 장승배기에서 서편 농로를 따라 필두마을 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왼편에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옛날 이곳에 안동김씨 재궁(齋宮)이 있었다고 하여 『재궁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필두(筆頭) 재궁골 입구에서 농로를 따라 약 100m쯤 가면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필두(筆頭)』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안동김씨 · 안동권씨 · 순흥안씨 · 평해황씨들이 이주하여 살면서 서로 돕고 잘 살자는 뜻에서 도울 필弼 · 집 대(臺)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필대(弼臺)라고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발음이 변하여 『필두』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래밭골 필두마을 뒤편 남서쪽으로 약 500m쯤 가면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 너머 골짜기를 『모래밭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골자기를 내려가면 장수면 반지미 마을로 이어진다.
솔안마 영주자동차학원 입구에서 오른편 길을 따라 약 600m쯤 가면 상줄교회가 있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솔안마』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마을 안 쪽에 소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솔안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당마 솔안마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약 400m쯤 가면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서당마』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마을에 첫 입향한 나주정씨들이 자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철종 7년(1856년) 봉강서당(鳳崗書堂)을 세웠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서당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너서리 서당마에서 서쪽 오르막길을 따라 약 400m쯤 가면 굴다리 너머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너서리』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에서 남쪽길로는 안정면 묵리와 이어지고, 북쪽길로는 안정면 내줄리 마을로 이어진다.
가흥동 서천교(西川橋)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중앙선 철길 위 고가도로를 지나가면 서천을 가로지른 긴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서천(西川)에 있다 하여 『서천교』라 불러오고 있다.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다리는 왜정시대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처음 세워졌는데, 영주에서 풍기 · 단양 ·서울로 가는 모든 차량들이 이 다리를 건너다녔다고 한다.
배고개 서천교를 건너 왼쪽 강변도로를 따라 약 400m쯤 가면 주공3단지 아파트가 있고, 아파트 입구에서 오른편 농로를 따라 약 300m쯤 가면 산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배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중기에 창원황씨 일족이 이주하여 살면서한양(漢陽) 배고개(이현梨峴)에 살던 지명을 따서 마을 이름을『배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창원황씨 후손이 안정면 용산리 대룡산 순흥안씨 댁으로 장가들어 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텃골 배고개 마을 노인정 앞 오르막 고개를 너머 가면 긴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텃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지비장골 배고개 마을에서 시립도서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긴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지비장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도화동(桃花洞) 서천교를 건너 풍기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제일고등학교가 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도화동』이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곳은 풍기 고을로 가는 길목으로 주막(酒幕)에 작부(酌婦)들이 많아 이들을 복숭아꽃에 비유하여 도화(桃花)라고 불렀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도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는 이 마을을『윈기리』라 불렀다고도 한다.
샘골 제일고등학교에서 풍기방향으로 약 400m쯤 가서 오른편에 형제천막 옆길을 따라 가면 마을이 있는데, 이곳을 『샘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마을이 개척될 때 이곳이 지대가높은 곳임에도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고 하여 『샘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고개 제일고등학교를 지나 풍기방향으로 약 500m쯤 오르막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나무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때 군수로 부임한 하륜(河崙)이 풍수지리에 밝았는데, 고을 산천을 둘러보고 서쪽이 허실하여 고을에 재난이 많이 일어나고 인재가 나지 않으므로 이 고개 주변에 나무를 심어숲을 이루게 하였다고 하여 고개 이름을 『나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고개 마루에 수 백 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지나가는 길손들이 쉬어갔다고 하여 『나무고개』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도화동마을에 복숭아 꽃을 찾아오는나비들이 많아 『나비고개(접현)蝶峴』라 불렀는데, 이 나비가 나부 그리고 나무로 변하여 『나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굴미 거치실 입구에 에너벨리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도굴미』라 불러 오고 있다.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오래 전에 이곳에 조림용 묘목을 기른 곳이라고 하여 『묘포장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꺼치실 제일고등학교 입구에서 풍기방향으로 약 200m쯤 가면 왼쪽으로 십자 정신요양원이 있는 방향으로 긴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꺼치실』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가난한 사람들이 죽으면 관(棺)을 마련할 돈이 없어 거친 가마니에 둘둘 싸서 이 골짜기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하여 『꺼치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지골(仙池谷) 십자정신요양원 입구에서 장수면 반지미 방향으로 약 400m쯤 가서 굴다리를 바로 지나면 논이 있는데, 이곳을『선지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곳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던 못이 있었다 하여『선지골(仙池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너니골 선지골 입구에서 노인전문요양원 자비동산이 있는 골짜기로 약 400m쯤 가면 왼편으로 이어진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너니골』이라 불러 오고 있다.
배나무고개 너니골 서쪽으로 장수면 두전리 아랫반지미 마을로 너머 가는 고개가 있는데, 옛날 이 고개 마루에 배나무가 있었다고 하여『배나무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불개미지골 선지골 입구에서 장수면 반지미 마을 방향으로 약 200m쯤 가면 왼편에 대현사 절 뒤편에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을 『불개미지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사바리고개 불개미지골 입구에서 장수면 반지미 방향으로 약 500m쯤 가면 오르막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사바리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딱따리미 서천교에서 오른편 강변로를 따라 약 600m쯤 가면 왼편에 시영아파트와 소백산관광호텔이 있는데, 이곳을 『딱따리미』라 불러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100여 년 전 필두 마을에 살던 안동 권씨 일족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는데, 당시 마을 앞 물가에 딱딱한 바위가 마치 짐승의 꼬리 같이 길게 뻗치어져 있다고 하여 꼬리 미(尾)자를 써서 『딱따리미』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밤디들(栗坪) 딱다리미에서 창진동 방향으로 약 400m쯤 가면 국도유지영주사무소 맞은 편에 비닐하우스가 많은 넓은 들이 있는데, 이곳을『밤디들』이라 불러 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시청에서 이곳을 『율평들(栗坪)』이라 불러오고 있다.
페이지 담당자가흥2동 김상희 ( 054-639-7976 ) 페이지 수정일 : 2018-09-07 만족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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