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연혁
- 삼국(三國) 및 통일신라시대(統一 新羅時代)
- 삼국시대(三國時代) : 고구려의 급벌산군(及伐山郡)
-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 급산군(及山郡)
- 고려시대(高麗時代)
- 초기(初期) : 흥주(興州)
- 성종(成宗) (960~997) : 순정(順政)
- 충목왕(忠穆王)4년 (1348) : 순흥부(順興府)
- 조선시대(朝鮮時代)
- 태종(太宗)14년 (1413) :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
- 세조(世祖)4년 (1458) : 도호부(都護府)를 폐지하고 일부를 영주(榮川), 풍기군(豊基郡), 봉화현(奉化縣)에 편입
- 숙종(肅宗)10년(1683) :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회복
- 고종(高宗)34년(1895) : 순흥군(順興郡)
- 1914. 04. 01 - 영주군(榮州郡)[순흥군(順興郡),풍기군(豊基郡),영주군(榮州郡) 병합(倂合)] 순흥면(順興面)
- 1980. 04. 01 - 법률 제3188호 (1979.12.28 공포) - 영주시·군 분리(榮州市·郡 分離)
- 영풍군 순흥면(榮豊郡 順興面)
- 1995. 01. 01 - 법률 제4744호 (1994.08.30 공포) - 영주시·군 통합(榮州市·郡 統合)
- 영주시 순흥면(榮州市 順興面)
지명유래
리 별 | 유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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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리 | 고려 충렬왕, 충숙왕, 충목왕 세분의 안태지(安胎地)가 됨으로 태장(台庄)으로 부르고 있으며, 태는 삼공(三公)을 말하고, 장은 곳을 말함 |
지동리 | 지곡지, 재방지등 마을주변에 못(池)이 많아 못(池)자를 따서 지동(池洞)으로 부르고 있음 |
석교리 | 하천건너 지형이 고양이 몸체형이고 고양이가 쥐있는 곳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600년간 돌다리를 놓고 돌다리로만 건너 다니게 한데서 생긴 지명임 |
읍내리 | 순흥면 소재지가 있어 1909년 행정구역 책정시 읍내리라고 칭함 |
내죽리 | 속수 : 순흥, 비봉산 밑에 있는 큰 마을을 내죽1리라고 말한다. 송림동 : 개척 당시 마을 입구에 커다란 솔밭이 있었던 것이 연유되어 생긴 지명임 |
청구리 | 본래 순흥부 내죽리의 지역으로서 청뚜들 또는 청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옥계리, 여근리를 청구리라 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음 |
배점리 | 조선 선조때 무쇠쟁이 배순(裵純)이 국상을 당하자 상복을 입고 소백산 위에 올라가서 삼년동안 임금과 나라를 위하여 통곡망배하여 충신 정문이 1615년에 내려져서 배충신이라 하고 망배하던 산봉을 국망봉이라 칭하게 되었고 나라에서는 무쇠점을 주었다. 그 연유로 배점이라 부르게 됨 |
덕현리 | 박동수라는 선비가 약 400여년 전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개척당시 옆고개에서 다래와 머루를 얻어 허기를 면했다하여 덕이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덕현리라 칭하게 되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