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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사유

영주 유연당은 悠然堂 金大賢(1553~1602)이 1589년(선조 22) 그의 외가가 있던 奉香里(휴천동)에 건립했다.

그 후 중년에 沙禮(사례)(현 하망 동)로 옮겨 후손들이 관리해오다가 1900년경에 지금의 元塘(원당)(현 하망동)으로 건물을 그대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당호는 陶淵明(도연명)의 詩 「飮酒(음주)」 가운데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에서 취한 것으로, 김대현이 거주하면서 전란극복에 기여함과 동시에 ‘八蓮五桂(팔련오계)’를 배출해낸 지역 역사문화의 상징적 의미가 큰 건물이라 하겠다.

유연당은 口자형의 정면을 이루고 있는 중문간 및 사랑채가 좌우로 각기 1칸과 2칸씩 돌출해 길게 놓여 있고 그 뒤편에 ㄇ형 안채가 안마당을 에워싸고 있는 등 19세기 후반의 구조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안채의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며, 다수의 고서자료뿐만 아니라, 「世傳書畵帖(세전서화첩)」 「請斬普雨日記(청참보우일기)」 「晦齋退溪兩賢辨誣疏(회재퇴계양현변무소)」 「屛虎保合顚末(병호보합전말)」 등의 미공개 주요자료를 비롯해 12,000여점에 이르는 고문서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 문화재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으므로 문화재자료로 指定한다.

지정세부내역
이 표는 유연당의 명칭, 재료, 구조·형식·형태, 규격, 수량, 기타특징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번호 명칭 재료 구조·형식·형태 규격 수량 기타특징
1 영주 유연당   1곽(2동)  
  ① 몸   채 목조 홑처마, 팔작지붕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8칸 측면1칸
정면5칸 측면4칸
1동 사랑채
안채
  ② 문간채 목조 홑처마, 우진각지붕 정면5칸 측면1칸 1동